2021년 6월 3일 목요일

빗멍

 빗멍

 




요즘 난 어머니께서 발가락 뼈 골절을 당하신 뒤로 식사를 챙겨 드리거나 집안 살림 같은 것들을 하고 있다.​

 

오늘 오후가 병원에 세 번째 검진을 가는 날이었는데 비가 올락말락 하다가 결국 출발할 즈음엔 내리기 시작했다.​

 

병원까지의 거리가 약 700 미터 정도밖에 안 되서 늘 휠체어에 모시고 갔었는데 오늘은 비 때문에 자차로 이동하기로 했었는데 아뿔싸! 시동이 안 걸렸다.​

 

평소 우리집 차는 어머니께서 화실에 가실 때 사용해왔고 최근 한 달 여동안 주차장에 파킹된 상태로 운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배터리 방전이 의심되었다.​

 

병원 예약시간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급한대로 카카오 택시를 호출해서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.

 

​병원까지의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배차가 과연 될까 싶었는데 바로 택시가 잡혀서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.

 

늘 하던대로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의 진료 결과를 들었는데 다행히도 이제 반깁스를 풀고 목발로 걷는 연습을 좀 하시라는 소견을 들었고 다음 내원 예약을 한 뒤 다시 카카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.​

 

집에 와선 보험사에 전화해서 자동차 수리기사님을 호출했고 약 15분 정도 기다리니 바로 오셨다.

 

점검 결과 배터리가 2018년도 제품인데 수명이 다했다고 하셔서 2021년도에 생산한 새 제품으로 교체를 했다.​

 

오후 3시쯤 다시 회사로 출근해서 일했고 6시반쯤 퇴근해서 저녁을 차리려고 했는데 어무이가 다 준비해 놓으셔서 그냥 먹고 설거지만 했다.​

 

난 매번 움직이지 마시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어머니께선 누워만 있기가 불편하셨는지 최근엔 밥이나 국 같은 것들을 자꾸 해놓으신다.​

 

저녁 식사를 하고 대충 정리를 마친 뒤 정오쯤 대학동기가 보내준 대학시절의 교수님의 아버지 부고 문자를 뒤적였다.​

 

장례식장이 내가 사는 곳의 바로 옆동네인 국립경찰병원 장례식장이었기에 오늘 입었던 출근 복장에 검정색 정장 상의만 걸치고서 저녁 8시 즈음 차를 몰고 나섰다.​

 

장례식장에선 정말 오랜만에 무릎을 꿇고서 하나님께 고인과 가족분들이 안녕하시길 기도했고 교수님께 짧게 인사를 드린 뒤 다시 집으로 향했다.​

 

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신호대기 상태에서 잠시동안 차창 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.​

 

문득 가끔씩은 이렇게 혼자 드라이브를 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​

 

집에 돌아와 세탁기를 돌리고 침대에 누워 콜라를 홀짝이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적고 보니 인생에 멍때리는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절감한다.​

 

멍, 정신없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속에서 오롯이, 온전히 나를 느끼는 고마운 순간이다.​

 
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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